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색 작전 (문단 편집) ==== A집단군의 공세 ==== [[파일:external/40.media.tumblr.com/tumblr_mwbmy5vzWg1spwf52o1_1280.jpg|width=500]] > 내 앞에는 적군이 없고 뒤에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A집단군 사령관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장군 A집단군은 항공지원에 힘입어 캅카스의 관문인 로스토프에 도착했다. 그 후에 8월 1일까지 쿠반 강에 도착했다. 8월 9일 1기갑군이 마이코프에 도착했다. 이는 2주만에 480km를 주파한 정말 기록적인 속도였다. 이제 캅카스의 유전이 독일군의 차지가 될 차례였으나, 독일군 눈 앞에는 소련군에 의해 파괴된 유전만이 널브러져 있었다. 유전이 재가동되려면 1년 남짓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 직후 독일군은 퍄티고르스크(Pyatigorsk)로 진격해 그곳을 점령했으며, 8월 12일에는 캅카스 산맥에 도달했다. 그러나 여전히 캅카스 지역의 점령은 완전하지 않았고, 카스피 해의 유전들은 살아남았다. 너무 길어진 보급선은 독일군의 진격을 방해했다. 흑해는 사용될 수 없었고, 보급은 로스토프에서부터 이어지는 철로에 의존해야 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석유로, 보급 차량에 지급할 연료조차 없어서 낙타를 이용해야 할 지경이었다. 전진은 23일부터 점차 느려지기 시작한다. 남동부의 국방군은 이런 악재에도 계속 전진하여, 중요한 석유 생산기지인 [[바쿠]]와 [[그로즈니]]로 향한다. 다수의 상태 양호한 산업시설이 독일군의 손에 떨어졌고, 독일 국방군은 타만반도와 노보로시스크 군항을 공격한다. 이후 흑해 연안을 따라 옐라스타를 점령한다. 전진은 그로즈니 북쪽에서 멈췄다. 소련군은 그로즈니를 방어하기로 작정하고 9군과 44군이 배치되어 방어선을 구축했다. 독일 공군은 더 이상 국방군에 대한 지원이 불가능했고, 소련군 항공기는 별다른 저항없이 독일군이 차지한 교량과 보급선에 대한 공습을 수행한다. 국방군은 9월 2일 테렉 강을 건넜지만 전진 속도는 끔찍할 정도로 느렸다. 9월 초에 3만의 보충병과 6천대의 차량 15000마리의 말이 흑해를 건너왔다. 이는 흑해의 대부분의 항구가 독일의 손에 있었으며 제공권이 장악되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https://ko.wikipedia.org/wiki/%EB%85%B8%EB%B3%B4%EB%A1%9C%EC%8B%9C%EC%8A%A4%ED%81%AC|노보로시스크]]에서의 전투는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 소련군 47군은 참호에 들어가 저항했으며, 격렬한 4일간의 전투 끝에 9월 10일 노보로시스크는 함락된다. 독일군은 기세를 몰아 흑해 부근의 소련군에 대한 포위섬멸을 목표로 계속 공세를 이어나갔으나 이 지역은 흑해 해안을 따라 험악하기 그지없는 캅카스 산맥이 자리잡은 곳이었다. 즉 독일군의 장기인 보전합동 같은 건 무리였고 소련군과 별 다를바 없이 보병들이 산악전을 벌여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독일군의 전투력도 소련군보다 크게 나을 게 없었다. 결국 남쪽 해안 도로를 차지한 채로 농성을 벌이던 소련 47군에게 독일군의 공세는 모두 격퇴당하여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로즈니도 소련군의 저항에 점령되지 못했고, 10월에는 보급선의 붕괴로 인해 독일군 A집단군의 전진은 완전히 정지되었다. 이후 본국에서의 지원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가한 독일군에게 몰리고, 더 이상의 지원군 없이는 전진이 불가했던 독일군은 소련군의 반격까지 겹처 캅카스 지역에 그대로 머물게 된다. 게다가 기갑군까지 빠져나가, 더이상의 유의미한 공세는 불가능했다. 이는 후일 또다른 파국을 불러올 재료가 될 뻔했다. 이 때 독일군은 캅카스를 점령했다는 상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1943년 1월 유럽 최고봉으로 꼽히는 [[옐브루스]]를 등정했다.[* 여담으로 이때 독일군은 산 정상에 나치 독일 깃발을 걸어놓고 왔는데 나중에 캅카스를 탈환한 소련군이 다시 산을 등정해 깃발을 뽑아버리고 소련 국기로 바꾸었다고 한다.] 옐브루스를 점령한 제49산악군단은 [[캅카스 산맥]]을 넘어 [[흑해]]로 진격, 소련군을 포위섬멸하고, 독일군의 [[조지아]]와 [[남캅카스]]로의 교두보 마련을 시도하였지만 캅카스 산맥에서의 소련군의 완고한 방어로 인해 옐브루스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데 실패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